김관수 개인전, 2004. 2004. 11. 2 ~ 11. 14, mia



미술애호가들을 위한 전시 안내 - 이야기꾼 김관수

현대미술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 어려움이 그림 속에서 '사과'나 '해바라기' 같은 쉽게 알아 볼 수 있는 형태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라면, 현대미술은 생각만큼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자신만의 개인적인 경험들을 가지고 있듯 예술가들도 그런 경험을 토대로 표현하고 있고, 그래서 동시대 예술가들의 작품에 공감할 가능성은 그만큼 큰 것이다.
사실 현대미술의 난해함은 예술가들의 미술언어를 이해하려는 일에 익숙지 않은 우리 자신의 문화적 경험과 태도에 기인하고 있는 바가 크다. 어떤 사람들은 예술가에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표현해 줄 것을 요구한다. 하지만, 그렇게 그려지는 그림 속 어디에 그의 예술적 개성과 창의성, 상상력이 자리잡을 수 있겠는가?
미술작품을 감상하는 일은 한 예술가의 지성과 감성을 통해 이 시대를 바라보고 이해하는 일이며, 그 예술가를 위한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의 정신을 풍요롭게 만드는 일이다. 이것을 위해 잠시 숨을 고르고 예술가들의 언어와 감성에 주목하는 정도의 노력은 그리 비싼 대가가 아니지를 않겠는가?

김관수는 1980년대 한국미술계를 풍미했던 주요 작가의 한사람으로, 베니스 비엔날레에 홀로 초대를 받을 만큼 국제적 무대에서도 관심을 끌었던 예술가이다. 그러던 그가 홀연히 미술계를 떠나 십 수년이 흘렀고, 오늘 그간의 긴 공백을 깨고 우리 곁에 다가와 다시 선다.
김관수는 많은 이야깃거리를 지닌 예술가이다. 아니 자신의 이야기를 감칠맛 나게 전해주는 작가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물론 그가 남들에 비해 특별한 경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좀 더 섬세한 신경세포와 독특한 문학적 정서를 가지고 있고, 그래서 자신의 소소한 경험들에 집중함으로써 슬픈 동화를 지어낼 수 있을 뿐이다.
김관수는 검은 색으로 칠해진 상자의 유리장 속에 대단한 물건이나 되는 듯, 남들에게는 결코 대수롭게 받아들여질 수 없는 낡은 단추 한 개와 말라 비틀린 동물의 뼈 등을, 무슨 중요한 고고학적 유물쯤 되는 듯 조심스럽게 배치한다. 하지만 그 단추와 뼈, 지푸라기들에는 누구에게나 있음직한, 김관수의 기억 속에 생생하게 각인된 어린 시절의 사연들이 담겨져 있다. "많은 예술가들이 난해한 미술이론들에 관해 한마디씩하곤 했지만 사실 난 어린 시절 큰 충격을 받았던 길례 누나 생각을 더 많이 했었어요. 그 누나는 수문 조정탑 위에 고무신을 벗어놓고 자살했거든요. 온 동네에서 떠들었었지요. 나중에 커서 들었지만 동네 청년들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해요."
"이 단추는 내가 아주 어릴 적에 돌아가신 외삼촌의 오버코트에 달려있던 것인데…" 하고 시작된 이야기는 '산 넘고 물 건너 바다건너서'로 이어지며 한편의 센티멘탈 스토리의 틀을 갖추어 간다.
세상에…, 달랑 단추하나로 그런 이야기를 만든다면, 도대체 그가 가진 이야깃거리는 얼마나 되는 것일까? 그는 길례 누나를 남몰래 혼자 좋아했던 것일까? 그래서 아직도 그 누나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일까? 김관수는 얼마나 여린 감성의 소유자인가?

사실, 김관수의 경우처럼 작가의 배경을 알고 작품을 보는 것과 전혀 모르고 보는 것의 차이가 큰 경우도 흔치 않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가 고이 간직해 온 어린 시절의 유물들을 찬찬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작가의 이야기가 우리 자신들의 옛 이야기와 자꾸 겹치게 된다는 점이다. 누구에게나 어린 시절 남몰래 좋아했던 동네 누나가 한 사람쯤은 있을 것이고, 친척 중 누군가의 단추는 더 많지 않겠는가? 결국 그의 이야기는 옅은 망각 속에 잠들어 있던 우리들의 옛이야기들을 되살려 내게 만들고, 우리로 하여금 잠시 그 애잔하고 가슴 아린 추억에의 회상에 젖어들게 하는 것이다.

그의 검은 상자들이나 잿빛의 부조물들은 우리로 하여금 그와 우리 자신들의 이야기 속으로 침잠해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고 있는 일종의 연극적 장치인 셈이다.
김관수 예술의 진정한 힘은 우리의 마음을 다독이고 어루만지는 따스함 그리고 애잔한 센티멘탈리티에 있다. 나는 김관수의 전시를 준비하며, 감상자들의 마음에 다가서는 예술에 관해 생각해 본다. 이번 전시를 위해 제작된 거대한 호박 꼬다리에는 또 무슨 사연이 깃들어 있을 것인가?

오상길(작가, MIA 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