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한 1회 개인전, <오해는 곧 나의 목적>展, 2005. 6. 29 ~ 7. 12, 관훈 갤러리
ㅁ 오해는 곧 나의 목적, 이태한
ㅁ 침묵 속의 붉은 바람, 오상길
ㅁ 휘어진 직선도로 위에서, 최선
ㅁ 친숙함과 낯섦 사이의 변주, 도병훈
ㅁ 경계위에 서서..., 사혜정



오해는 곧 나의 목적 _ 첫 개인전을 준비하며


고백하건데 나는 어떠한 문제를 극복하기위해 스스로 대안을 제시해오는 작업과정을 거치지 않았다. 대부분 순간순간의 충동적인 욕구와 아이디어가 그것을 대신해오곤 했다.
다만, 나는 기존 나의 습관적인 태도를 버리기 위하여 오히려 이를 따르려 노력했고, 결국 나 라는 사람의 일정한 한계와 패턴을 발견하고 확인하는 성과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오늘 그런 나의 한계와 패턴을 도마위의 생선처럼 올려보고자 한다.

나는 그간 미술에 관계된 몇 가지 일들을 해오면서 틈틈이 비디오, 컴퓨터, 웹 작업 몇 가지를 남겨왔다. 물론 왜 그것이어야 하는가에 대하여 스스로 묻고 대답해왔다고 생각하지만, 돌이켜 보건데 소위 매체작업이 갖는 미학적 특수성이나 작가로서의 문제의식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었다기보다는 나를 둘러싼 환경과 개인적인 감수성에 의해 좁혀진 결과에 다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시'라는 일종의 이벤트를 앞두고, 여러 가지 문제들에 대하여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전시'란 단순히 자칭 작가들의 시시콜콜한 일상사나 과대망상적인 상상력을 늘어놓기 위한 무대가 아니라, 문화적 가치를 생산해내기 위한 사회적 장치로 마련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가들은 작업실에서의 습관적인 태도를 전시장에서도 여전히 고집할 수만은 없으며, 해석과 개입의 통로에서 자연스럽게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그가 원하든 그렇지 않든….
또한 나에게 있어서 이러한 환경의 변화(작업실에서 전시장으로)는 ‘보여주기'에 관한 매체의 환경적 기반과 근본적인 속성마저 다시 생각하게끔 한다.
예를 들어, 개인적인 공간에서의 컴퓨터 마우스는 제어를 위한 가장 기본적이면서 효율적인 인터페이스로써 그 역할을 하지만, 여러 가지 문화적.사회적 의미가 덧씌워진 미술관, 갤러리 공간에서는 규정되지 않은 많은 소통의 수단 중 하나에 불과해진다. 따라서 인터랙티브에 대한 거대한 환상을 가진 사람이든 그것의 근본적 체험을 바라는 사람이든, 이들에게 미술관에서의 마우스 인터랙티브는 매우 시시하고 단순한 경험일 것이다. 때때로 음성이나 온도, 냄새, 빛 등을 감지하는 새로운 인터페이스들이 개발되고 도입되곤 하지만, 이는 매우 쉽게 소비될 수 있으며 그만큼 쉽게 익숙해짐에 따라 부질없는 소비를 가속화할 우려가 있다.
결국 문제는 ‘무엇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보여줄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관람자의 욕구와 충돌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관람자의 욕구는 얼마든지 나와 다를 수 있으며, 오해는 클수록 결국 나의 목적에 가까워지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에 출품된 〈숨〉, 〈붉은 깃발〉, 〈무제-모터장치가 달린 신발〉은 그러한 의도에 충실한 작품들 중 선택되었으며, 각각의 접근방법이 조금씩 서로 다른 만큼 그 조합을 통해 목적하는바 역시 존재한다. 다만 그것은 나의 목적일 뿐 이를 설명하는 일은 권한 밖의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2005년 6월, 이태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