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AS 서울현대미술연구소


  오상길(2017-10-16 02:11:01, Hit : 813, Vote :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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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V-국전을 통해 본 한국의 현대미술》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V-국전을 통해 본 한국의 현대미술》


20세기 한국미술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서구미술과의 ‘문화혼성cultural hybrid’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문화혼성은 분쟁이나 교류 같은 정치사회적 변동성 속에서 이루어지고, 충격과 혼돈, 갈등을 거쳐 서서히 고유문화로 자리를 잡아간다. 마치 몽고의 침략이 남겼던 댕기머리와 색동저고리처럼 말이다.
서구미술과의 혼성은 일제 강점기 이후 본격화되어 지금껏 현재진행형인 문화현상으로, 정치나 사회, 산업과 경제 등 타 분야와 맥을 함께 한다. 따라서 20세기 한국미술을 문화혼성의 관점에서 다시 보는 일은 ‘미술이라는 문화를 통해 역사를 바라보는 작업’이자, 현대화 과정 속에 나타나고 있는 개별 예술가들의 성취를 통해 한국미술의 문화적 가치와 특수한 존재방식을 살펴보는 일이 될 수 있다.
이 시도는 20세기 한국미술을 서구미술의 역사개념에 기대어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 같은 서구의 틀에 끼워 맞춰온 국내 주류 미술관들과 미술평론가, 미술사 전공자들의 시각과 상당한 차이를 제시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전혀 다른 역사를 거쳐 온 한국미술의 역사를 서구미술의 틀을 빌려 진술하는 것은 어떻게 보아도 부자연스러운 일이다.

필자는 서구미술의 영향을 역사라는 거시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동시에, 이 변화의 과정에 수반된 혼성성의 문화적 실체를 구체적으로 규명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접근은 제도와 미술운동 같은 사건과 집단적 현상에 집착해 ‘역사’와 ‘예술’의 가치를 논해야 할 미술의 역사를 사건사 또는 미술운동사로 전도시켜 왔던 입장들과 거리를 유지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20세기 한국미술은 역사적 변화의 실체들을 구체적으로 검증하고 그것이 예술작품 속에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지에 관한 각론 연구를 통해 진술해야 한다. 즉 5,000년 역사의 연장선상에서 20세기 한국미술의 좌표를 구하고, 개별 작가들과 예술작품들에 관한 구체적, 실증적 연구에 입각한 역사진술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이런 맥락에서 필자는 연인원 44,000여 명이라는, 대다수의 미술인들이 참여했던 《국전》을 통째로 역사에서 배제해 온 까닭과 그 당위를 다시 살펴볼 필요를 느꼈다. 그동안 《국전》은 일제강점기 《조선미술전람회, 이하 ‘선전’》를 모델로 만들어졌다거나, 심의과정에 비리가 있었다거나 안이한 아카데미즘 미술의 온상이었다는 비판을 받아 왔다. 모든 일에는 공과가 있기 마련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비판은 전제 자체가 모순되어 있고, 사실과도 다르며 본말이 전도되어 있다. 자세한 내용은 11월 24일의 학술심포지엄을 통해 체계적으로 밝히겠지만, 일제강점기의 제도를 물려받은 것은 《국전》만이 아니며, 중요한 것은 제도가 아니라 그 제도를 통해서 생산한 미술의 문화적 가치다. 또 일부 심사위원들의 비리 때문에 대부분의 작가들이 소외라는 불이익을 당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아카데미즘 미술의 온상이라는 비난 또한 전혀 근거 없는 매도였다. 그런 아카데미즘은 역사상 그 어디에도 존재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전시 《국전을 통해 본 한국의 현대미술》은 《국전》에 참여했던 작가들 중 문화혼성기의 시대적 고민을 안고 대안을 모색했던 작가들의 성취를 구체적으로 밝혀가기 위해 기획되었다. 좋은 작품들이 많았지만 모든 작품들을 다룰 수 없으므로 기획의 취지를 뒷받침할 여섯 파트의 작품들을 수십 차례 검토하여 엄선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작가들이 이미 작고했고, 유족의 행방마저 알 수 없거나 작품을 찾을 수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전시 공간 확보문제로 너무 많은 시간과 노력을 허비한데다가, 일부 작품 소장처의 협조를 얻지 못해 난항을 거듭했다.

갖은 어려움 끝에 전시가 준비되었다. 첫 번째 파트 ‘한국의 전통회화, 풍경 속 사의성(寫意性)’은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로부터 단원 김홍도의 회화적 진경산수를 거쳐, 청전 이상범, 소정 변관식, 옥산 김옥진에 이르기까지의 흐름을 묶었다. 이 흐름은 우리 전통회화의 높은 품격과 회화적 완성도를 갖춘, 동시대 서구미술에 대응할만한 경쟁력 있는 한국미술로 평가할 만하다.

두 번째 파트 ‘전통회화와 서구미술의 문화혼성’에서는 1960년대 서구추상미술의 영향 속에서 고뇌를 거듭하며 치열하게 현대화의 길을 모색했던 전통회화 작가들의 도전을 살피고 있다. 이들의 고민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유사 앵포르멜 경향의 작업들과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고 이 시기의 미술사를 한층 두텁게 해줄 것이다.

세 번째 파트 ‘다시 실경-전통회화의 현대화’는 전통회화가 서구추상미술의 영향에 경도되어 가는 현상을 경계하며 제3의 실경(삶의 현장)으로 눈을 돌려 새로운 돌파구를 찾았던 일군의 작가들을 묶고 있다. 이 새로운 모색의 시도가 전란의 폐허를 복구하고 산업의 발전이 가속화되는 시기와 맞물려 있고, 미술계 역시 유사 앵포르멜의 열풍에서 벗어나 실험성 강한 미술로 눈을 돌리고 있던 1970년대 초반에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네 번째 파트 ‘재현의 variation-회화적 다양성’은 소위 구상 또는 좌상파 아카데미 미술 등의 분류가 저열하게 느껴질 만큼 개성적인 예술적 성취를 남기고 있는 작품들을 다루고 있다. 서방국가들의 원조와 차관에 의존하던 70년대 초반까지는 현대화가 곧 서구화로 인식되던 분위기였으며, 화단과 언론도 서구추상미술을 추종하며 유행의 첨단에 섰던 작가들을 주목했다. ‘추상’ 대 ‘구상’의 이분법적 구도나 ‘추상’이 ‘구상’보다 더 현대적인 미술양식으로 인식된 것도 이런 문화적 환경의 소산이었다.
누구든 맥락도 없는 추상화를 따라 그리면 현대작가로 인정받던 시대, 전문성 없는 언론들이 이런 문화현상을 전면에 내세우고, 검증능력이 없던 미술제도들이 이것을 수용함으로써 추상미술이 마치 시대의 대세처럼 보였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문화충격이 야기한 일시적 현상일 뿐, 비평담론을 통해 다루어야 할 예술적 자각이나 성취와 거리가 먼 것이었다. 본래 미술의 역사는 고독하게 시대에 맞서 수용과 대응을 고민했던 개별 예술가들의 실험과 도전에 의해 구축되어 왔다. 가령 김형구의 <해조음, 1973>이나 이동훈의 <어촌의 광장, 1976>, 이종우, 김창락, 김영창, 이의주, 손응성 등이 ‘대상 재현’이라는 틀 속에 남기고 있는 독특한 예술적 성취 같은 것들 말이다.

다섯 번째 파트 ‘서사narrative와 회화’는 서구 모더니즘 미술이 추구했던 순수적 지향-비대상적non-objective, 비재현적non-representational, 비구상적non-figurative 추상과 대조적인 작품들에 주목한 결과다. 이봉상이나 황유엽, 박창돈, 박항섭, 홍종명, 최영림, 양달석, 황영성 등은 시대적 유행이나 서구사조의 영향과 거리가 먼, 지극히 내밀한 개별적 경험과 기억들을 독특한 마띠에르를 통해 이야기 구조로 서술해 내고 있으며, 이런 흐름이 미술계 전체가 서구추상미술의 세례를 받고 있던 상황 속에서 공존하고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여섯 번째 파트 ‘문화적 후위-한국추상미술의 스펙트럼’은 1960년대 집단적으로 등장했던 유사 앵포르멜과 차별화된 추상의 전개과정을 보여준 남관이나 김환기, 전혁림, 권옥연, 류경채, 변종하 등의 독특한 추상작업들을 묶고 있다. 이 작가들의 공통점은 각각 추상에 이르는 지극히 개인적인 그래서 더욱 흥미로운 변화의 이행과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 주목했다.


Dada를 제외한 모든 시각예술은 다른 시각예술의 문화적 후위이며, 어떤 측면에서 예술은 본질적으로 다른 예술의 참조를 통해 이루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르네상스가 그리스 미술을 계승하고, 파블로 피카소가 폴 세잔의 다시점을 심화했듯 미술의 역사는 끊임없는 참조의 역사이자 문화적 후위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미술은 서구미술의 후위일 수 있으며, 중요한 것은 그 후위문화의 실체가 동시대미술 맥락 속에서 어떤 가치를 획득하는가에 있다.

유난히 어려움이 많았던 전시였지만, 이 작업이 왜 필요한 것인지를 다시금 확인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필자는 서구미술의 영향이 20세기 한국 미술계와 작가들을 어떻게 변화시켰고, 그 결과로 어떤 미술이 생산되었는지 살펴보는 일이 매우 흥미로운 비평적, 미술사적 후위활동이라고 확신한다. 이 전시가 20세기 한국미술을 새롭게 바라보는 연구 활동의 시작이자, 21세기 한국미술의 진로를 모색하기 위한 본격적인 실천이 되기를 희망하며,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어려움에 봉착했던 이 기획을 위해 기꺼이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머리 숙여 깊이 감사드린다.

2017년 10월,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V-국전을 통해 본 한국의 현대미술》전
기획자 오상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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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V 심포지엄(고용수, 한국예술연구소 연구원)
추상과 한국의 현대미술-메타비평을 위한 질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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