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CAS 서울현대미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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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V 심포지엄(고용수, 한국예술연구소 연구원)

이봉열의 초기 작품 연구 – 《국전》 출품작을 중심으로

고용수(한국예술연구소 연구원)


1. 들어가며

이 글은 이봉열(1937~)의 초기 작품을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이하, 《국전》)에 출품된 작품을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본 심포지엄과 연계되어 사전에 개최된 《《국전》으로 읽는 한국현대미술》전에서 이봉열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파시>(1966)가 전시되었다. 전체적으로 회색조의 화면 상단에는 푸른색 삼각형의 면들이 두드러지고, 그 아래는 각이 진 흰색의 면 띠가 부각된 그림이었다. 그림 안을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드로잉의 자유로운 필치와 물감의 질감, 흘러내린 물감 자국들이 가득 차 있었다. 이 작품은 실제로 과거의 《국전》에 출품된 것은 아니지만 이봉열의 초기 작품의 단면을 추적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실물’이었다.
      작가로서 이봉열의 삶에서 《국전》은 매우 중요하다. 공모제도 속에서 그가 받은 문교부장관상의 위상이나 입선에서부터 추천작가, 심사위원까지 단계별로 상승된 입지와 축적된 명예가 아닌 그의 초기 작품의 변화 과정을 그대로 담고 있는 축소판이자 현재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깊은 실마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이봉열에 관한 독립적인 학위 논문이나 학술지 논문이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전시 서문 형식의 비평과 미술관 전시의 도록에서 《국전》 출품작에 대한 언급은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이 글은 195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이어지는 이봉열의 초기 작품을 《국전》 출품작을 중심으로 살펴봄으로써 이봉열 작품 전체를 이해하기 위한 부분을 보완하며 동시에 개인 작가의 작품의 변화 과정을 담고 있는 《국전》의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2. 이봉열 비평

1999년 김복영은 이봉열의 전시 서문에서 그의 회화가 10년마다 한 번씩 변모했다고 평했다. 70년대가 평면 단위 공간을 분절하여 어떻게 현전시킬 것인지에 관한 격자구조의 관심에서 80년대는 탈 격자 또는 격자 해체의 경향을 시도했다고 요약했다. 90년대는 몸의 개념에 중심을 두면서 화면과 작가 자신과의 일체화에 관심을 기울였다고 밝혔다. 한편 2008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개최된 《한국추상회화 1958-2008》전의 도록에서 조은정은 ‘반복과 구조’라는 글 중 이봉열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1950년대와 60년대 초반 도시를 배경으로 한 회화가 70년대 들어 기하학적 구조로 변화되었는데, 이러한 변화 중에도 변하지 않은 것이 “공간에 대한 추구”라고 언급했다. 또한 <광시곡> 시리즈에서 사각형의 반복되는 구조가 유리창, 한국 전통문살을 연상케 하며, 격자로 지워내고 남은 얼룩이 작가의 제스처에 의한 흔적들이라고 평했다. 평론가 정병관은 ‘인격의 반영으로서의 작품’에서 이봉열의 작품은 진실된 그의 인격 겸허하게 반영되어 있다고 평하였다. 평론가 심상용은 ‘이봉열의 회화 방해요인들이 충분히 사라질 때의 호흡으로 그리기’라는 글에서 이봉열이 피상적인 성공과 거리를 두고 작업해 왔으며, 1950년대 추상표현주의 시기를 거쳐, 1970년대는 파리 체류의 시기를 포함하여, 미니멀한 기하학적 분할을 기반으로 한 구성적 추상으로, 1980년대 후반에는 기하학적 면으로 분할하는 구성적 요인이 사라졌다고 밝혔다. 이렇듯 이봉열에 관한 평론은 필자들의 관점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1960년대까지는 추상, 1970년대는 격자 구조의 추상, 1980년대는 격자 구조가 사라지거나 벗어나는 경향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많은 내용을 담을 수 없는 전시 서문에서는 1960년대 이봉열의 초기 작품 또는 추상 작품이 어떤 것이었는지 자세히 언급되지는 않았다.

3. 이봉열의 《국전》 출품작

1) 대상의 재현에 관한 탐구 (서울예고 시절-1957)

이봉열의 《국전》 출품작을 살펴보기 전에 서울예고 시절에 그린 작품과 서울대 미대 1학년 때 그린 작품을 포함하여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국전》 첫 출품작이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그렸던 작품이기 때문이며, 다음 단계로 변화되기 이전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봉열이 《국전》에 처음으로 출품한 것은 대학교 1학년 때인 1957년 제6회이며, 서양화부에 280점이 출품되어 72명이 입선을 하게 되는데 그중 한 명이 된다. 이 시기는 반《국전》 의식이 표면화되어 나타난 1956년 《4인전》과 그것의 연속선상에서 한국 ‘앵포르멜’ 운동으로 점화되는 1957년 현대미술가협회 발족의 시기, 1957년 개최된 《현대작가초대미전》과 맞물린다. 집단 운동의 흐름과는 다른 방향으로 개인 작가로서 이봉열의 《국전》 참여는 등단의 기회가 전무 했던 미술계 상황에서 유일한 돌파구였다. 물론 집단적인 미술운동과 《국전》을 병행한 작가도 있었지만 이봉열은 이제 막 미술에 입문한 단계에 있었다. 이때 출품된 작품의 제목은 <풍경>으로 알려져 있고, 이봉열에 따르면 고등학교 3학년 때 정동의 풍경을 그린 유화 작품이라고 한다.(도판1) 도록에 실린 흑백 사진만 남아 있고, 실제 작품은 분실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 자세하게 확인하기는 어렵지만 이 풍경의 주제부는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호텔인 손탁 호텔이 철거(1922년)되고 지어진 프라이홀로 추정된다. 후경에 보이는 건물은 옛 러시아공관이다. 이봉열은 현재의 이화여고 3층(당시 서울예고가 초기에 쓰던 건물)에서 내려다 본 풍경을 그대로 그린 그림이라고 증언하였다. 주제부에 그려진 것은 현재로서는 더 연구되어야 하지만 적어도 후경에 그려진 것은 정동의 언덕 위에 있는 옛 러시아공관임이 분명하다. 6.25 전쟁으로 파괴되어 탑 부분과 건물의 일부만 남아진 일종의 폐허를 포착한 것이었다. 작가는 가시거리에 있는 일상의 풍경을 그려냈을지 모르지만, 이 작품은 분명히 표현의 방식으로서의 사실을 넘어 1950년대 후반 정동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앞의 <풍경>이 사실적 재현과 현실의 반영 두 가지를 담고 있다면, 이 작품 이후에 그린 것이자 이 역시 고등학교 3학년 때 그린 <애기 업은 소녀>는 대상을 변형한 작품이다. 이봉열에 따르면 서울예고 2학년 때, 유화를 습득하기 시작했는데, 당시 미술선생님이었던 김병기의 가르침을 받았다고 한다. 김병기는 이봉열에게 입체파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했고, 구상에서 출발하는 방식이 아닌 추상적인 형태에서 구상적인 것으로 이끌어 나가는 생각을 해보라는 조언을 했다고 한다. 즉, 대상을 변형한다거나 새로운 시도를 해 보라는 것이었다. 실제 김병기는 미국으로 떠나기 전 ‘형상성과 비형상성의 문제’라는 제목으로 『사상문집』에 기고한 바 있다고 밝힌 적이 있으며, 세잔이 형상성을 유지한 채 비형상성을 보인 작가라고 언급하고 있다. 스승이었던 김병기의 이러한 생각이 이봉열에게 온전한 지침이 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느슨한 영향력을 주었다고 보는 것은 합당할 것 같다. 이 조언이 실제 제작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한 것은 형의 도움이 컸다. 이봉열의 친형 이구열은 일본어에 익숙해 책을 번역할 수 있었고, 그것들을 동생에게 보내주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밖에 일본책, 영어책 등 헌책방에서 구입한 미술서적들을 보내주었고 이봉열은 이를 접할 수 있었다.
     형상을 변형하여 그린 사례가 고등학교 시절에 한정될 수 있으므로 《국전》 출품작은 아니지만 다른 예를 들면, 서울대학교 1학년에 때 그린 <도시의 한편>이 있다.(도판2) 이 작품은 전체적으로 황토 빛과 부분적으로 푸른빛, 연 자주 빛이 가미된 화면으로 완전히 추상적이지 않다. 유사한 황토색조들은 다소 거친 외곽의 불분명한 선들에 의해 면을 이루고 어둠과 밝음의 차이에 의해 2차원의 공간과 3차원의 공간이 뒤 섞인 것처럼 그려져 있다. 전통적인 선원근법이나 대기원근법과 같은 암시를 주지 않기에 구체적인 도시의 풍경이라기보다 도시라는 대상을 주관적으로 변형한 것임을 보여준다. 이렇듯 이봉열은 서울예고 시절에서 서울대 미대 1학년때까지 미술학도로서 재현의 문제에 대한 탐구를 중요시 여겼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 추상으로의 전환 (1961-1965)

이봉열의 작품은 군 제대 후 3학년으로 복학하면서 이전에 했던 대상의 재현에 대한 관심에서 추상화로 전환된다. 이는 1961년 제10회 《국전》에 문교부장관상을 거머쥐는 <서편(西便)>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1961년 《국전》은 이전과 다른 몇 가지 변화가 나타나는데, 5.16 이후 군사정권이 등장하면서 《국전》에 대대적으로 지원하게 되는 정치적 변화가 나타나고 《국전》 내부적인 변화로 기존의 심사위원을 고문으로 추대하여 실질적인 심사권한을 축소시키며, 추상 분야의 심사위원 비율을 높인다. 작품의 내용과 형식적인 변화에서도 이전과 달리 ‘리얼리즘 계열의 사실화’가 등장하고 ‘앵포르멜 계열의 추상미술’이 수용되는 변화를 보였다. 조선일보 현대미술초대작가전에 출품해 왔던 김형대의 <환원 B>가 10회 《국전》에서 국가재건최고의장상을 받은 것은 《국전》으로의 앵포르멜 진입 흐름을 보여준다. 또한 1960년 파리에서 귀국하여 서울대에서 강의하고 있던 권옥연, 추상 작업을 계속 해 왔던 정창섭의 격려로 서울대 미대 학생들은 많은 추상 작품 출품하기도 했다.
     이봉열의 <서편>은 서쪽 석양의 분위기를 표현한 것으로 형식적 측면인 회화 제작의 방법과 재료 사용에 집중한 것이었다.(도판3) 이봉열에 따르면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까닭에 유화 물감만을 캔버스에 직접 쓰기보다 마티에르 질감을 표현할 수 있고 두터운 물감층을 표현할 수 있는 아연화 가루를 사용했다고 말한다. 아연화 가루는 원래 피부병 치료에 쓰는 것인데, 이것을 질이 좋지 않은 린시드 찌꺼기에 섞어 흰 물감처럼 만들고 밑바탕에 바른 후 굳혔다고 한다. 그 다음 유화로 색을 입히고 닦고 그 위에 또 색을 입히는 방식으로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당시 도록에 실린 작품으로는 자세히 확인할 수 없지만 신문 보도에 실린 간략한 평에 따르면 “이봉열의 화면은 암흑에다 녹청색조를 혼하게 써서 추상을 지극히 심상화하려는 중복적인 화면이다. 오히려 시각은 투시적인 구축면을 지녔다.”라고 표현하고 있다. 나아가 “끈덕진 기름기 광택을 니낀하게 반사하는 화폭속에 황·홍·남과 같은 점들이 보석과 같이 반짝이는 것인데 이러한 그림은 이러한 그림대로 수공예적인 「마치엘」에 재미를 붙이는 듯한 효용성을 내미는 것이다.”라고 언급하고 있다. 또 다른 기사는 김흥수의 작품에 빗대어 이봉열의 작품을 평가하면서 “한 개의 신인이 소재의 촉각적인 표현의 쾌미나 조형적인 배려가 하나의 정형을 이루기란 지난한 일에 속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한편, 김병기는 이봉열의 <서편>을 ‘반추상’이라 지칭하며 “다소 정신차원은 얕은 것이 있지만 화면처리는 어느 정도 성실한 것으로 보았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평가들은 다소 부정적인 관점이 녹아있긴 하지만, 공통적으로 이봉열 작품의 형식 문제를 지적하는 것으로 린시드 찌꺼기를 섞어 씀으로써 생긴 광택, 마티에르, 촉각적인 표면을 정확히 읽어내고 있다.
     <서편>을 포함하여 이후 《국전》 11회에 출품한 야만의 것, 때가 묻지 않은 땅을 의미하는 <만지>, 12회에 출품한 <흙>, 13회에 출품한 <토심>, 14회에 출품한 <꿈>은 전체적으로 어두운 색조를 유지한 추상 작품들이다.(도판4-7) 이봉열은 교지에 자작시를 기고하기도 하는 등 문학에도 관심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이 작품들은 언어를 이미지로 상징화하는 측면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추상으로 전환된 1961년부터 1965년까지는 일관적으로 두터운 마티에르를 만들어 내는 형식 문제에 몰입한 것으로 보인다. 선명한 도판으로 확인이 가능한 12회 출품작 <흙>을 보면 아연화 가루와 린시드가 굳어져 만들어 낸 균열의 질감이 선명하게 드러나며, 그 사이에 배어있는 다양한 색들은 단 한 번에 표현되는 작업이 아니라 제작 과정의 시간이 축적되어 만들어 진 것임을 확인할 수 있다. 이처럼 이봉열 작품에서 대상을 재현하는 문제는 이제 추상으로 전환되었고, 보다 구체적으로는 캔버스 내에서 재료와 제작 방법에 대해 고민하는 것으로 변화되었다.    
    
3) 회화에서의 공간 탐색 (1966-1972)
이봉열 작품의 또 다른 변화는 1966년 <파시>부터 시작된다.(도판8) 허물어지는 것, 어떤 것이 무너지는 시점을 의미하는 <파시>는 구체적인 형상이 배제되는 것으로 강화된다. 그러면서 강조되는 것이 회화 화면 내에서의 다양한 공간 탐색이다. 《국전》 15회에 출품된 <파시>는 현재 흑백으로만 확인 가능하지만 이봉열의 기억에 따르면 화려한 색조의 작품이었다고 한다. 화면의 세로 대각선을 가로지르는 면 분할이 등장하며, 이 경향은 《국전》 16회 출품작 <파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도판9) 또한 1965년까지의 작품과 달리 회화 화면을 공간으로 인식하고 화면의 중심과 주변부의 관계를 탐색하는 것으로 나아간다. 닫힌 형태와 열린 형태들이 교차하고 프레임의 모서리를 활용하며 색점으로 몇몇 부분을 강조한다. 이러한 공간의 탐색은 공통적으로 삼각형, 대각선의 구조를 만들거나 지워내며, 17회 《국전》 출품작 <잔상D>에서 그것을 뚜렷하게 보여준다.(도판10) 여러 색을 바탕에 깔고 흰색으로 지워가며 아래의 층들이 오묘히 비치도록 하고 물감이 풀어 헤쳐진 공간과 경계 지어지는 공간들은 이질적으로 같은 화면에 공존한다. 또한 의도적으로 화면의 가장자리를 놓치지 않고 활용한다. 18회 《국전》 출품작 <잔상69>는 흰 색의 삼각 구조와 격자 구조로 푸른 색의 화면을 지워내고 지워 낸 공간에는 다시 푸른색이 침투하는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도판11)
     1970년부터는 <광시곡> 시리즈가 등장하는데, 《국전》 19회에 출품한 <광시곡>은 이봉열의 회화가 사방으로 흩어지는 선과 작은 파편의 면들의 자유분방한 필치를 남기기 위해 지우고 덧 입히는 추상으로 변화되었음을 보여준다. (도판12) 이어 《국전》 20회에 출품된 <광시곡 No. 7> 역시 다양한 색을 밑바탕에 깔고, 끊기는 선들 일부만 남겨두기 위해 화면의 많은 부분을 지워낸 것을 볼 수 있다. (도판13) <광시곡> 시리즈는 <파시>와 <잔상>시리즈의 견고한 지움과 달리 더 부드럽고 자유스러운 지움을 강조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앞서 살펴본 1966년부터 1972년까지의 작품은 1961년부터 1965년까지의 작품과 비교하여 두터운 마티에르를 내는 것에서 밝은 색과 얕은 화면으로 변화되었고, 삼각형의 구조나 격자의 구조, 대각선의 구조와 같은 기하학적 구조를 밑바탕에 두고 지워내는 작업으로 변화된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즉, 재료의 사용에 집중하거나 질감 효과를 내기보다 캔버스의 중심과 주변, 모서리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회화 공간을 탐색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4. 나가며

최근 현대화랑에서 이봉열 개인전 《공간여정》이 개최되었다. 이 전시는 목탄으로 문질러 큰 화면 전체를 가득 채우는 2017년 신작들과 1970년대-2000년대까지의 격자구조의 회화와 화면을 분할하여 처리하는 회화들이 다수 전시되었다. 몸과 그리는 행위가 부각된 최근의 작품은 이봉열의 작업이 여전히 진행 중임을 보여주었다. 지금의 자유분방함과 역동성은 이봉열의 초기 작품과 그 변화 과정을 이해할 때 더 생생하게 와 닿을지 모른다. 그렇기에 이 글은 이봉열의 초기 작품이 압축되어 있는 《국전》 출품작에 주목하여 변화의 순간들을 포착하고자 했다.
     서울예고에 입학하며 일찍이 미술을 접한 이봉열은 스승 김병기의 조언과 형 이구열의 서구 및 일본의 미술 자료를 제공받으며 대상의 재현에 대한 문제를 탐구한다. 대상의 재현에 대한 문제는 있는 그대로의 표현이 아닌 변형하는 것이었다. 이후 군 제대 함께 학교에 복학하면서 본격적으로 추상 작업으로 전환한다. 1961년 문교부장관상을 받게 된 <서편>부터 1965년까지 그의 《국전》 출품작은 추상의 형식 문제 특히, 회화 내에서 재료와 방법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몰입한 과정을 담고 있다. 1966년부터 1972년까지의 출품작은 회화 공간 내에서 화면의 중심부터 모서리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기하학적인 구조를 토대로 지우거나 덧입히며 공간을 탐색하는 흔적들이 담겨 있다.
     이봉열은 스스로 《국전》에 대해 “나에게 그 시기가 도움이 되지는 못했어요. 작가라면 고민하고, 좌절도 하면서 성장해야하는데 그럴 기회가 없었던 거지요. 그냥 순탄하게 졸업을 한거나 마찬가지예요.” 라고 회고한 적이 있다. 이는 작가로서 일찍이 주목받고 좋은 평가를 받았던 것을 겸손하게 표현한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국전》은 이봉열에게 단지 작가로서의 경력 성장이 아닌 작가 개인 작품이 변화되는 과정을 담고 있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초기 작품의 변화 과정은 구상에서 재료와 방법을 탐구하는 추상으로, 나아가 회화 공간을 탐색하는 추상으로 크게 세 시기를 거치며 진지하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변화의 과정은 이후에 완전한 격자 구조로 정리되는 1970년대 후반 작품과 격자구조를 벗어나는 1980년대의 작품으로의 연결을 설득력 있게 한다. 다만 《국전》 출품작을 창작미술가협회 출품작과 개인전 출품작, 해외에서의 전시 출품작과 비교하여 전체적인 변화 과정 속에서 면밀히 살펴보지 못한 점은 한계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은 이봉열의 《국전》 출품작을 미약하게나마 정리하고, 이봉열 전체 작품 연구, 비평 작업과 현재의 작품 이해에서 선행되어야 할 초기 작품의 궤적을 밝혔다. 한국 현대미술의 역사적 문맥에서 《국전》을 거쳐 간 수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다시 되돌아 봐야 할 필요성을 느끼며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참고 도판

도판2 이봉열, 도시의 한편, 1957
도판1 이봉열, 풍경, 1956 제작, 《국전》6회(1957) 입선


















도판3 이봉열, 서편, 《국전》10회(1961) 문교부 장관상

도판4 이봉열, 만지, 《국전》11회(1962), 무감사 특선

도판5 이봉렬, 흙, 《국전》 12회(1963), 무감사 특선





도판6 이봉렬, 토심, 《국전》 13회(1964), 추천작가 출품

도판7 이봉렬, 꿈, 《국전》 14회(1965), 추천작가 출품

도판8 이봉열, 파시, 《국전》 15회(1966), 추천작가 출품















도판9 이봉열, 파시, 《국전》 16회(1967), 추천작가 출품

도판10 이봉열, 잔상D, 《국전》 17회(1968) 추천작가 출품


도판11 이봉열, 잔상69, 《국전》 18회(1969) 추천작가 출품














도판12 이봉열, 광시곡, 《국전》19회(1970) 추천작가 출품

도판13 이봉열, 광시곡 No.7, 《국전》 20회(1971) 추천작가 출품














참고문헌
단행본
오상길 엮음.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 Ⅲ』, Vol. 1,  서울: 도서출판 ICAS, 2003
――――――――.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 Ⅳ』, Vol. 3,  서울: 도서출판 ICAS, 2004
――――――――.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 Ⅳ』, Vol. 1,  서울: 도서출판 ICAS, 2004

학술지 논문
김미정. “한국 앵포르멜과 대한민국미술전람회-1960년대 초반 정치적 변혁기를 중심으로”, 『한국근현대미술사학』, Vol. 12,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04

전시도록
조은정. “반복과 구조”, 서울시립미술관 편, 『한국추상회화 1958-2008』, 2008
정병관. “인격의 반영으로서의 작품”, 『이봉열 공간여정』, 현대화랑, 2017
심상용. “이봉열의 회화 방해요인들이 추분히 사라질 때의 호흡으로 그리기”, 『이봉열 공간여정』, 현대화랑, 2017

신문기사
“서양화부 입상자”, 『경향신문』, 1957, 10. 17.
“제 10회 《국전》평 서양화부”, 『경향신문』, 1961. 11. 3.
“제 10회 《국전》평 양화부”, 『경향신문』, 1961. 11. 4.

웹 사이트
http://www.arthub.co.kr/m/board/archive_view.html?No=4680

인터뷰
연구자와 이봉열의 인터뷰. 2017. 1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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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 V - 심포지엄(이임수,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V-국전을 통해 본 한국의 현대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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